멀시핸즈 매일묵상 💜 내 눈을 열어 주소서

멀시핸즈 매일묵상 💜 내 눈을 열어 주소서
Photo by Zetong Li / Unsplash
  • 콩고 김바울 선교사의 매일 묵상을 편지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시편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마태복음 6: 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캄캄한 밤에 사막을 걷던 나그네가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물 한 병만 있어도 생명을 건질 수 있으나 어디에서도 물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어두워 앞뒤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나그네는 방황하다 지쳐 쓰러졌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돋았다. 그런데 나그네가 쓰러져있는 바로 몇 발자국 앞에는 샘이 있었다. 빛이 있었더라면 물을 찾았을 것이요 그는 생명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라도 캄캄한 밤에는 보이지 않는다. 밝은 빛 가운데서 아름다움도 더 빛나는 것이며 화려함도 돋보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빛이 없어 어두움 속에서 헤매듯 나의 영혼도 헤맬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구 소련의 우주 비행사 티토브(Gherman Stepanovich Titov)는 우주 여행에서 돌아온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주에서 하나님을 찾아 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육의 눈으로는 우주에 나가 아무리 살펴본들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똑같이 우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미국의 우주 비행사 맥디브(James McDivitt)는,

“나는 우주의 신비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영안으로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신령한 눈이 아니면 볼 수 없다.
미국의 우주 비행사 맥디브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영안이 열린 사람이었고, 그 눈으로 우주에 나가서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섭리로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같은 것을 보아도 육의 눈으로 보는 사람과 영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페니 크로스비(Fanny J, Crosby)는 시각장애인으로 9000여 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썼다. 그녀는 태어난지 6개월 때 다른 사람의 실수로 앞을 못보게 되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듣고 영의 눈이 열려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기도하는 중에 신령한 노래들을 많이 썼다.

내가 좋아하는 찬송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녀가 썼다. 이렇게 사람의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눈 앞의 것만 보는 육신의 눈과 보이지않는 것을 보는 ‘마음의 눈이다. 이 마음의 눈을 영적인 눈이라고도 하며 ‘영안’이라고 한다.

사람은 보는 불여일견(不如一見)'한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라디오를 듣는 것보다 TV를 보는 것을 "더본다" 고 한다. 또 "맛을 본다" "만져 본다" "맡아 본다" "들어 본다"..등 "본다"는 말을 붙여서 많이 쓴다. 이렇듯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보기를 잘해야 세상은 잘 살아간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이 있다. 공기, 사랑, 행복, 믿음, 원자나 양자, 전자, 핵, 전기 등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육신의 눈은 가까운데 있는 것은 보이지만 멀리있는 것은 볼 수가 없다. 겉에 있는 것은 볼 수 있으나 속에 있는 것은 볼 수 없다. 물질적인 것은 볼 수 있으나 영적인 실재는 볼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보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고 보여 달라고 하는데 육신의 눈은 부정확하다. 똑바른 젓가락을 맑은 물그릇에다 집어 넣고 보면 똑바른 것이지만 구부러져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태양은 그대로 있고 지구가 도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눈만을 가지고 판단했다가는 큰 잘못을 저지를수 있다. 근시안을 가지고 가까운 것만 보고 멀리 볼 줄 모르면 인생을 바로 살 수 없고 성공적으로 살 수 없다. 인생을 사는데도 멀리 바라볼 줄 알아야 바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면을 볼 줄 알아야 참으로 지혜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로마서 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의 능력을 볼수있다. 영안이 열리면 마음의 문이 열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아가게 된다. 인생의 앞길에 거친 홍해 바다가 넘실거려도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고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믿음의 길에 목마름으로 갈증을 느끼더라도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넘치는 샘물을 경험하게 하실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의 영안이 열리고 내가 영의 눈으로 바라볼수 있을까?

[누가복음 11:34~35]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내가 하나님을 보려면 영안이 열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셔야 한다. 나의 믿음의 눈을 뜨게 해 주셔야 한다. 나의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고, 말씀대로 살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나의 영안을 열어 주실 때에 성경의 여러 기적들과 예언들, 말씀이 믿어지고 감동을 받게된다. 그리고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되고 새롭게 살려고 노력한다.

나의 영안이 열려 영의 눈으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욕심을 버려야 한다.

[마태복음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이 세상 물질만 사랑하고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은 미래를 볼 줄 모르고 영안이 밝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선입견이나 교만, 증오심을 버려야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선입견은 마치 색안경과 같다.

파란 안경을 쓰면 파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마음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다른 사상이나 자기 나름의 어떤 철학 사상이 틀어 박혀 있으면 그것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보고 영안이 열리기 위해서는 선입견도 교만과 증오심도 버려야 한다.

둘째, 회개하고 거듭나야 한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박사 학위를 많이 가졌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그 영혼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바로 볼 수가 없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 죄가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일류 학교를 나왔어도 바로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고 거듭나게 될 때에 영의 눈이 밝아져서 바로 볼 수가 있다.

셋째, 바른 자리에 서야한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높은 데 올라가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맑은 날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온 시내를 멀리까지 다 볼 수 있는 것 같이, 심령이 맑고 죄악의 구름과 안개가 다 벗겨져 나가야 다른 사람이 능히 볼 수 없는 것을 멀리 바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넷째, 성령님의 도움으로 성령충만함을 받고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믿음이란 눈에 안 보이지만 보이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고 나가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 안나타났지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보는 것 같이 믿고 나가는 것이다.

"나의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하는 이것이 나의 진정한 기도가 되어야한다.

[에베소서 1:18~19]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 안에서 나를 새롭게 하고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주님은 내 마음의 눈을 밝히사 마음의 신령한 눈을 떠서 더 근본적이고 신비한 것을 알아가게 하신다.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부르심의 소망은 나의 사역과 삶이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나를 부르시는 소망이 무엇인지 알면 행복해 진다.

"하나님이 나를 왜 곤고하고 힘든 콩고에 선교사로 보내셨나? 나를 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나? 그리고 지금 내게 바라시는 소망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부르신 분명한 목적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소망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절대로 낙심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소망을 갖고 계시는데 내가 나에 대해서 절망하는 것은 죄다. 하나님이 베푸신 큰 능력 안에서 죄와 죽음을 이기고, 근심과 염려를 이기고, 영적전쟁에서 승리할수있는 큰 능력을 주님이 주셨다.

오늘도 영안이 열리어 주님이 이미 주신 능력을 깨닫고 콩고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을 갖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 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을 위한 Paul Kim의 기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하나님의 생명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세워주시고, 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시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근시안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이 보는 눈을 가지게 하옵소서.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볼 줄 아는 눈, 부정적인 면을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을 보는 눈, 물질과 육신만 보지 말고 내면과 영적인 실재를 보는 눈, 현재만 보지 말고 장래를 볼 줄 아는 눈을 갖게 하옵소서.
헛된 욕심과 선입견을 버리고 회개하고 바른자리에 서서 성령충만함을 받고 믿음의 눈을 가지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나의 영안을 열어 주셔서 하늘의 소망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소망 가운데 참고 견디고 승리하고 담대하게 전진하는 믿음의 사역이 되게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영의 눈으로 더욱 멀리 보게 하시고 소망 가운데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참고 견디고 승리하고 담대하게 전진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와 묵상에 게으르지 않게 하시고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나의 마음의 문이 열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 안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콩고 민주공화국 김바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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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들께, 주님의 평안을 전합니다. 저희 가족이 태국 깔라씬주 동파융 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하며 만난 특별한 인연, 짜짜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언어와 문화를 넘어선 '최고의 선물' 짜짜는 제 딸 온유가 유치원에 다닐 때 처음 만난 친구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달랐지만, 두 아이는 지난 4년 동안 함께 놀고, 예배드리고, 율동하며

멀시핸즈 매일묵상 💜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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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고 김바울 선교사의 매일 묵상을 편지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21]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시골 마을들을 찾아가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꾸미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몇몇 할아버지 할머니는 스튜디오 위로 올라가 퀴즈대회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