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시핸즈 매일묵상 💜 십자가는 구원이다. 하나님의 의는 선물이다.
- 콩고 김바울 선교사의 매일 묵상을 편지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로마서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어느 주일 아침이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교회 안에는 조용한 기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앞자리에 한 성도가 앉았습다. 그는 교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사업도 성공했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했다. 십일조도 빠짐없이 드리고, 선교헌금도 많이 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늘 ‘신앙 좋은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이렇게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술도 안 하고, 남을 속이지도 않았습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거룩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장로가 되어야 합니다. 장로가 되어 더 큰 일을 하게 하소서”
기도는 점점 길어졌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다. 그 때 한 남자가 조용히 예배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맨 뒷자리 끝에 앉았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겨우 말했다.
“하나님… 제가 너무 많이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 와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저를 좀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의 기도는 길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깊은 깨달음이 있었고, 그저 하나님의 자비만 구할 뿐이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사람이 더 의로운 사람일까?
놀랍게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
왜 그럴까?
앞의 사람은 자기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섰고, 뒤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하나님 앞에 섰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에게 십자가는 구원의 문이 된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복음은 선물이다. 그러나 그 선물은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의'는 착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종교적으로 열심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상도 아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문제는 자격이 아니라 '수용'이다. 선물이 눈앞에 놓여 있어도 받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손을 내밀어 받아야 한다. 믿음은 바로 그 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전적 부패를 가벼운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으셨다.
한 마디 말씀으로 “죄를 없던 일로 하자”라고 하지 않으셨다. 죄의 값은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완벽하게 거룩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값을 치르게 하셨다.
값 없이 받았지만 값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값 없이 받았지만 그 대가는 예수님의 보혈이었다. 그래서 믿음은 공로가 아니다. 믿음은 “내가 잘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을 내가 받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나에게 놀라운 자유가 찾아온다.
이제 나는 자신의 의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삶에서 자유한다. 또한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삶에서도 자유한다. 왜냐하면 구원의 기준이 “내가 얼마나 의로운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의를 얼마나 받아들이는가” 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의롭게 살아라”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의롭게 살 수 있는 의를 내 안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믿음으로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이제 질문이 달라진다.
“내가 얼마나 인정받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주신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할까?”
이것이 바로 은혜가 만든 삶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물을 받은 하나님의 의를 붙잡아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누가복음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나는 선교사로 사역을 하면서 종종 바리새인처럼 나 자신의 선함과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것이 내가 믿는 믿음의 핵심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화목제물’이라고 표현했다. 헬라어로는 ‘힐라스테리온 ἱλαστήριον (hilastērion)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는 속죄다.
죄에는 반드시 댓가가 따른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죄의 값을 치르는 희생 제물이 필요했다.
둘째는 화목이다.
죄로 인해 끊어졌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이 일을 위해 대속죄일이 있었다.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며 백성의 죄를 대신 속죄했다.
그러나 그 제사는 완전한 해결이 아니었다. 해마다 반복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 한 번의 완전한 대속제였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장벽이 예수님의 피로 무너졌다는 선언이었다.
이 사건은 어떤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갈보리 십자가는 전 인류 앞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었다.
그래서 복음은 2000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계속 전해지고 있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죄로 인해 찢어지고 상처로 무너진 인생일지라도 갈보리 십자가 앞에 나아가면 다시 회복되는 은혜가 있다. 십자가는 죄인을 정죄하는 자리가 아니라 죄인을 살리는 자리다.
지금은 사순절이다.
오늘 내가 구원의 중심에 있는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의를 붙잡아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으로 예수님의 참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을 위한 Paul Kim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던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시 품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내 의로 서려고 애쓰던 마음을 내려놓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을 치르신 은혜의 선물을 믿음의 손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주님의 보혈로 씻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평생 찬양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의를 의지하며 살게 하시고 이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콩고 민주공화국 김바울 선교사
콩고 유니송 교회 후원 요청
현지 교회 사역과 다음 세대 양육, 기본적인 예배 환경 유지를 위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작은 후원도 현지 성도들과 아이들에게 큰 희망이 됩니다. 기도와 함께 동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콩고 민주공화국 김바울 선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