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시핸즈 매일묵상 💜 내로남불의 신앙을 버리자

멀시핸즈 매일묵상 💜 내로남불의 신앙을 버리자
Photo by Sergey Shmidt / Unsplash
  • 콩고 김바울 선교사의 매일 묵상을 편지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어떤 성도가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는 가족 행사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날인데… 가족행사 때문에 주일을 안지켜? 쯧쯧… 신앙이 아직 약하군.”

그런데 몇 주 뒤, 그는 안 믿는 가족의 집안행사로 주일 예배를 빠지게 되었다. 그 순간,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정도 하나님이 주신 거잖아.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도 신앙이야.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니 꼭 현장 예배를 안드려도 되지"

그는 남이 예배에 빠지면 신앙의 연약함, 내가 빠지면 성숙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태복음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이렇게 같은 행동에 대해서 해석이 다른 경우는 너무나 많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본인이 지각을 하면 어제 야근을 하느라 늦은거니 회사가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하고, 젊은 후배 직원이 늦으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다고 말한다. 자녀들에게는 “휴대폰 좀 그만 봐라.” 라고 얘기하면서 정작 본인은 하루종일 휴대폰을 본다.

내가 하는 실수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하고, 다른 사람의 실수는 “저건 믿음이 없는 거야. 조심성도 없고, 덤벙대는 군” 이라고 말한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이 새벽기도에 못 나오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고, 내가 새벽 기도에 못 나오는 이유는 새벽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이 손뼉 치며 찬송하는 것은 세상적 유치한 신앙이기 때문이고, 내가 손뼉 치며 찬송하는 것은 어린 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눈물로 기도하면 유별난 신앙이고, 내가 눈물로 기도하는 것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남이 기도를 길게 하면 주책이 없는 까닭이고, 내가 기도를 길게 하는 까닭은 정성을 다하기 때문이다. 남이 헌금을 적게 하는 것은 인색하기 때문이고, 내가 헌금을 적게 하는 것은 하나님은 과부의 엽전 두 푼을 칭찬하셨기 때문이다.

남이 전도를 하지 못하는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내가 전도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때가 안되었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다. 남이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마귀 짓이고, 내가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남이 교회공동체와 목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가시 노릇이고, 내가 말하는 것은 교회공동체와 목회자가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충정이기 때문이다. 남이 교회에서 직분을 받으면 "벌써?" “저런 사람이?”인데, 내가 직분은 받으면 "이제야........." “당연하지” 라고 한다.

남이 봉사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이기 때문이고, 내가 봉사하지 못하는 것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이 예배 시간에 졸면,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눅22:46)는 말씀이 생각나고, 내가 졸면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127:2)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이렇게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문제 삼는 마음’ 타인의 행동에는 엄격하지만, 자신의 행동에는 관대함을 설명하는 말로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심지어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에서도 한국 사회의 naronambul 현상을 다룬 적이 있을 만큼, 이 단어는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이 말은 위선, 이중잣대, 자기합리화를 꿰뚫는 날카로운 풍자다. 이런 이중잣대와 자기합리화는 늘 ‘정당한 이유’라는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바로 그 판단으로 네가 정죄를 받는다.”라고 말한다.

[로마서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내로남불의 가장 큰 착각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심판은 있겠지만, 나는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가 없다.

[로마서 2: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로마서 2:3]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누가복음 13:3]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은 감정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서 있다. 사람의 기준은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흔들리지 않는다. 성경은 “죄를 지으면 망한다”고 하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한다. 죄는 회개로 끝낼 수 있지만, 회개하지 않는 상태는 죄를 끝낼 길이 없다.

내로남불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문제다. 주님과 나만 아는 그 엄밀한 영역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는 은혜가 오늘 선교사인 나에게 필요하다. 하나님의 참으심은 영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아직, 돌아올 수 있는 날이다.

주님의 생명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서 내 마음 안에 있는 내로남불의 어리석은 신앙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에 합당한 참된 회개의 삶을 통해 먼저 나 자신을 말씀 앞에 비추며 살아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을 위한 Paul Kim의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남을 판단할 때는 날카롭고, 나 자신을 바라볼 때는 한없이 관대했고, 같은 행동 앞에서도 남에게는 정죄를, 나 자신에게는 변명을 허락해 왔던 내로남불의 마음을 회개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의 거울이 아니라 자기합리화의 방패로 사용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앞에서 살아가게 하시고, 남을 재는 잣대가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비추는 말씀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님의 침묵을 당연함으로 오해하지 않게 하시고, 지금 돌이키라는 부르심으로 듣게 하옵소서.
나의 부족한 판단과 흔들리는 세상의 기준을 내려놓고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 앞에 겸손히 무릎 꿇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콩고 민주공화국 김바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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